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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카뮈 『이방인』

bookidoki 2025. 5. 9. 22:17

 

어러러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방인의 첫 문장은 단순하지만 이상하다.
이 말투, 이 태도,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인간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소설이다.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리지만, 사실 이 소설은 실존이나 철학이라는 거창한 개념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날것의 감정들로 우리를 흔든다.

 

주인공 뫼르소는 세상의 기대나 감정의 규범에 맞춰 살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직장에서의 승진에도, 여자친구의 결혼 제안에도 무관심하다.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마리의 요청에, 그는 단지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꾸미지 않는다.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대로 슬퍼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웃지 않는다.

이런 뫼르소의 삶은 소설 1부에서 무심하게 흘러간다. 낮잠을 자고, 바다를 산책하고, 수영하고, 영화를 보고, 여자친구와 잠을 잔다. 그는 단지 존재하는 것에 충실하다. 하지만 뫼르소는 친구 레몽과 함께 떠난 해변에서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된다. “태양 때문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단순한 핑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 태양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세계의 상징이며, 동시에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소설 2부는 완전히 분위기가 바뀐다. 법정, 감옥, 면회실이제 뫼르소는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사회의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그를 진정으로 단죄하고자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죄보다 감정의 결여로 더 큰 죄인이 되어간다. 변호사는 그의 무관심을 감정을 억제한 결과라 해명하려 하지만, 뫼르소는 그것이 거짓이라며 단호히 부정한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진실을 고수한다.

재판 과정은 하나의 연극처럼 묘사된다. 재판장, 검사, 변호사, 증인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 누구도 뫼르소의 진실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사법 체계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완전히 타자화된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사회의 위선, 제도의 부조리를 뚜렷하게 목격하게 된다.

뫼르소는 감옥에서 죽음을 마주하며 오히려 삶의 의미를 되짚기 시작한다. 그는 점차 세상의 논리에 타협하기보다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실 앞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찾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일종의 승리처럼 느껴진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속이지 않았고, 타인의 기대를 좇지 않았다. 그의 무관심은 오히려 가장 강렬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방인을 읽는 동안 나는 뫼르소가 낯설고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의 눈빛과 말 없는 고집이 점점 마음을 울렸다. 그 누구보다 진실하게 살아간 사람그가 바로 뫼르소였다. 그는 세상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였기에,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어느 순간 세상과 어긋나고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 안에도 뫼르소는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방인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지금도 유효하다.
삶의 표면을 걷는 사람들에게, 뫼르소는 깊이를 향해 뛰어든 한 인간으로 남는다.
그 낯섦은 결국, 진실의 얼굴이었다.

 

💬 좋은 문장은 오래 남는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p.70